이 원님이 다스리는 고을에 행세깨나 하는 부자가 살았는데, 이 사람이 위로는 아첨하고 아래로는 떵떵거리는 위인이었나 봐. 어쩌다 저보다 지체 높은 사람을 만나면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도 농사짓는 백성들을 보면 제 집 하인 다루듯 했다나. 그러니 백성들 사이에 평판이 나쁠 수밖에.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그런 소문이 원님 귀에까지 들어갔지. 원님은 언젠가 한번 버릇을 고쳐 주리라 마음먹고 있었어.
드런제 마침 그 부자가 환갑 잔치를하게 됐어. 행세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근방에 이름깨나 가진 사람들을 다 불러제끼니 당연히 원님도 초대를 받게 됐단 말이야.
원님이 부러 허름한농사꾼 차림으로 부잣집에 갔어. 해진 중의 적삼에 닳아빠진 짚신을 신고 머리에는 패랭이를 쓰고 혼자서 집안에 썩 들어갔지. 대청에 갖가지 음식을 떡벌어지게 차려 놓고 희희 낙락하고 잇는 부자 앞에 서서,
“주인께서는 만수무강하십시오.”
하고 축원을 했단 말이야. 부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내려다보더니,
“웬 백성이 함부로 지체 높은 양반 틈에 끼려 하느냐? 보아하니 술이나 한 잔 얻너먹으러 왔나 본데, 언감생심 마루에 오를 생각 말고 데문간에나 가서 기다려라.”
하더니 하인을 불러서,
“너희들은 대문을 지키지 않고 뭣들 라느냐? 저 비렁뱅이에게 술이나 한 잔 줘서 내쫓고, 앞으로는 잡님 단속을 단단히 하여라.”
이러는구나. 원님이 속으로 그럴 줄 알았다 하면서 선 채로 탁배기 한 잔 얻어 마시고 곧장 나왔어.
부리나게 동헌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제대로 차림새를 갖추는거지.관복을 차려 입고 사모 쓰고 목화 신고 사령들을 여럿 앞세우고 위풍도 당당하게 부잣집으로 갔어. 대문을 들어서자 부자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허리를 굽신굽신 하며 온갖 아첨을 다 늘어놓네그려.
“아이고, 사또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납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서 윗자리로 오르시지요.”
마루에 오르니 상을 다 물리라 하고 개로 진수성찬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 와서 벌여 놓고 이것 저것 권해 올리는구나.
“사또,차린 것은 없사오나 그저 많이 드옵소서.”
원님은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음식을 집어 드는데, 그걸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다짜고짜 관복에 갖다 넣네. 소매 속에도 집어 넣고 허리춤에도 끼워 넣고.
“아니, 사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부자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원님은 태연하게 그 짓을 되풀이하면서,
“아, 이 음식을 어찌 내가 먹겠소? 의관 대접이니 의관에게 주는 것이 옳지.”
하는구나. 부자는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원님 얼굴만 쳐다보고 있지.
“내 말이 틀렸소? 이 음식은 나를 보고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입은 의관을 보고 주는 것이 아니오?”
“사또,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소생이 사또께 바치는 음식이지어찌 의과을 보고 드리겠습니까?”
“그래요? 그러면 아까 탁배기 한 잔 줘서 내쫓은 것도 내 행색을 보고 그런 게 아니라 나를 보고 그러신 게요?”
그제야 부자가 사정을 알아차리고 사색이 되어 그저 죽을 죄를 졌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는군. 그래서 버릇을 아주 싹 고쳐놨다는 이야기라네.
“아무렴 돌려드리고말고요.’
하고 주인이 장롱에서 금덩어리를 꺼내어 장시꾼 앞에 턱 내놓으니 이놈이 아주 새파랗게 질려서 허겁지겁 도망가더라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이래서 생겼다는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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