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천문학] 조선 시대의 천문학 연구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서운관을 두고 천체 관측과 기상 관측 기계의 제작, 시설의 정비, 관측 제도를 완비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어서 해시계의 일종인 앙부일귀와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고, 자주적 역법을 확립하기 위하여 역서인 《칠정산내외편》을 간행하여 조선의 역법을 완전히 정리하였다.
[혼천의] 혼천의는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관측기이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이었던 혼천설에 기초를 두고 제작된, 중국의 특징과 전통을 지닌 우수한 천문기이다. 중국에서 기원전 2세기경에 제작된 이후 우리나라에 언제쯤 전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체로 삼국 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 시대쯤에 혼천의와 같은 각도계(각도를 재는 기구)가 천문 관측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간의] 간의는 혼천의를 간단하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적도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하여 혼천의 중에서 몇 개를 따로 떼어서 만든 것이다. 중국에서는 실제로 혼천의를 사용하여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였지만, 조선에서는 혼천의 대신 간의로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였다.
[더 알아보기-측우기] 세종 때 한반도에는 매년 봄 심한 가뭄이 거듭되었다. 조선 왕조는 농사철에 대비하여 각 도와 군, 현의 관청에 지시하여 빗물이 땅속에 스며든 정도를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였다. 이것은 강우량을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조선 왕조에서 시행되던 강우량 측정법은 이렇게 땅속에 스며든 빗물의 깊이를 자로 재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주로 봄에서 초여름의 농사철에 행해졌다. 1441(세종 23)년 봄에는 가뭄과 큰비가 번갈아 기승을 부려 그때까지의 강우량 측정법을 무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보다 과학적인 방법을 생각한 측우기를 발명하였다. 이것은 빗물을 그룻에 받아서 그 깊이를 재는 과학적인 것으로, 세종의 아들인 문종이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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